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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핵/환경] 울진반핵역사 - 첫번째(89 -91)
  글쓴이 : 울사연     날짜 : 07-05-17 21:32     조회 : 3463    
가. 항의 1기 (89.1.24 - 91. 11. 29)
- 79년 부지매입부터 87년까지 원전이나 핵관련 문제에 저항의식 없었음
- 88년 9월 10일 1호기가 상업운전 시작' 50여일만인 10월 30일 내부 합선사고로 가동중단,(107 일간의 정밀검사와 복구작업 끝에 89년 2월 14일 정상가동됨)됨에 따라 불안감과 안전성에 대한 논란 대두
- 89년 1월 24일 '울진원자력 인근주민 생존권보장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88년 11월 15일 북면 부구1리 청년 25명의 모임이 시초, 인근 14개 주민대표 참여), 핵발전소로부터의 안전성 확보와 경제적 피해보상이 주된 목적였으며, 3월이후 핵폐기장 건설반대가 추가됐으나 위원회 활동사항에는 없었음( 활동사항: 실업난 해소를 위한 주민우선채용, 인근지역 간이상수도 시설확장, 부구1리제방축조, 농업용수 해결, 해안침식 및 매몰로 인한 피해보상, 방파제주변 해안해산물 채취, 인근지역 경보기설치 등)
- 89년 2월 4일 급진성향의 '울진반핵운동 청년협의회'결성(전교협 교사 및 지역 청년학생 중심의 25명 혹은 30명,이후 60명선) 목적은 핵과 반생명적인 제 구조 일체를 추방하여 건강한 삶의 틀을 만드는 것(활동사항: 핵발전소 추방을 위한 주민운동등의 전개, 지역에서 발생되는 반생명, 반민중적 구조에 대한 조사 및 철폐작업, 반핵유관단체와의 연대, 민중민주단체와의 연대 등)
- 89년 3월 핵폐기장 후보지로 기성면 지역(3순위)과 북면지역(5순위)이 선정됨.
- 89년 3월 9일 생존권위원회 결의문 및 7개항의 결의사항 발표 : 핵폐기장 설치 적극반대, 방사능 누출시 비상방어계획 수립할 것, 임시 저장시설 공개 및  폐기물 증감사항 공개, 주민생존과 직결되는 사항 신속해결, 허위홍보와 왜곡보도 중단, 주민 건강진단 주기적 실시, 방사능 계측기 설치 보완
- 4월 15일 반핵청협 전국핵발전소 추방운동본부 창립에 참여( 서울, 16개 단체)
- 5월 2일 정부 울진원전3,4호기 기본건설계획 확정
- 5월 생존권대책위 1114명의 연서명으로 한전에 청원서 제출(7개항 + 감시단 구성, 핵에 관한 대토론회개최, 후속기 유치시 주민의견수렴, 주민 당면문제 해결 등)
- 6월 5일 한전 주민의 질의에 대해 3,4호기 계획이 없다라고 회신(이는 지역주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는 것과 모순됨, 끝까지 발뺌)
- 8월 5일 한전의 답변(편입토지보상은 최단시일내, 주민 비상방어계획은 책자로 홍보 예정 등)
- 8월 울진에 3.4호기 추가 건설된다는 소식 전파됨(12일 영남일보에 정식보도됨)
- 8월 26일 생존권위 핵폐기장 설치 및 후속기 원전건설반대 면민궐기대회 개최(부구국교, 5백 여명,반핵청협도 자체적으로 참여, 정문까지 평화적 시위)
- 9월 27일 생존권위 동자부,과기처,한전 등에 청원서 제출(핵폐기장 설치반대, 주민감시단 상설설치, 비상방제계획 홍보 및 훈련실시, 주민 민원해소후 후속기 건설, 발지법에 주민의견 반영할 것)
- 10월 12일 핵발전소 근무자 백혈병으로 사망( 87년 2월부터 근무,한전측은 원전과 무관주장,청협 성명서통해 근무자 방사능오염도 공개요구)
- 10월 환경보존회 창립( 회장 황치엽,전울진읍장 및 바살협회장, 향지회, 농민회,청협, 제이씨, 청지회 경우회 등 울진읍의 26개 단체 참여. 유명무실화)
- 10월 29일 반핵청협 재경울진중종고 동문에게 울진의 현실과 성금을 부탁하는 유인물제작,발송
- 10월 30일 청협 핵혈병사망과 핵폐기장에 관한 입장을 담은 성명서 발표
- 11월 20일 청협 '우리는 왜 핵발전소 11,12호기를 반대하는가'의 유인물 통해 핵이 지역의 문제가 아닌 민족의 문제임을 강조

- 90년 6월 5일  지역어민 2백여명 원전냉각수로 인한 피해보상 10억원 요구
- 6월 15일 북면지역 대책위 기형송아지문제 제기( 89년 10월 및 90년 5월 북면사계리)
- 7월 6일 원전근무자 간암으로 사망
- 7월 19일 원자력위원회 울진3,4호기 확정발표하자 생존권위 주민의견수렴 요구
- 9월 29일 죽변청년회 핵 강연회 개최( 강사: 공해추방운동협의회장 및 영광주민)
- 90년 11월 안면도투쟁으로 정부의 핵폐기장 건설계획 좌절
- 91년 5월 청협 '체르노빌 핵발전소 대참사 5주기를 맞이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 발표에 참여( 공해추방운동협 등 19개 반공해단체, 6개항의 요구 - 핵자료 및 정보공개,영광 3,4호기 중단 및 추가계획 전면백지화, 방사능에 대한 안전대책과 피폭자에 대한 치료와 보상 수립, 핵발전소 안전조치 실시, 핵없는 에너지체계 마련 - 발표)
- 5월 생존권위 주민보상을 전제로 3,4호기 수용 결정 및 요구사항 제시

● 91년 6월 6일 정부 2030년까지 울진에 17기의 핵발전소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
- 6월 10일 후포 및 울진J.C 회장(김장수,주광진)대책논의. 이후 안면도에 투쟁방안 모색차 파견, 중순경 합동 긴급이사회 및 상무위원회 개최 핵발전소추가건설 및 핵폐기장 반대운동 결의
- 6월 말 합동으로 각 사회단체에 공문발송
- 7월 2일 후포 반대위원회 결성
- 7월 16일 후포 제이씨 주최로 핵에 관한 대토론회 개최,'후포 핵시설 설치 반대위원회'결성(위원장 김용수 도의원)
- 7월 17일 울진제이씨 주최,주민 및 사회단체 3백여명 참여 원전추가건설반대 토론회개최, 반대준비위 결성( 주광진)
- 7월 23일 울진군의회 원전건설 및 폐기장 설치반대 결의, 동자부에 질의문 채택
- 7월 24일 '울진원자력발전소 건설 및 핵폐기장 설치 반대 투쟁위원회'결성
- 7월 26일 남북 준비위원 통합회의 통해 반투위 공동의장에 김장수,주광진 선출
- 8월 5일 군의회 질의서 동자부에 송부
- 8월 9일 반투위 오는 17일 대규모 군민결의대회 및 시위하기로 결정
- 8월 17일 울진군청앞에서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시부터 궐기대회 개최(생존권위는 개별적,농민회와 청협은 공식 가입 및 참여), 11시경 5천여명 시위행진 및 국도 점거, 1시경 투석전으로 발전, 최루탄발사 명령자의 즉각사과와 병력철수의 주민요구를 경찰이 수용 시위진정, 군청앞 마무리 집회 및 해산으로 이어짐(요구사항: 울진원전계획 즉각취소, 3,4호기 즉각중지, 1,2호기 피해사례공개 및 보상확대, 고장사례공개 및 대피요령 홍보, 원전 및 핵폐기장 반대 결사투쟁)
- 8월 17일 남부지역 주민 3천여명 후포여객선 터미널에서 집회, 상여앞세우고 거리행진,정오쯤부터 국도점거 , 최류탄 및 화염병 투석전, 7시간동안국도 마비, 오후 11시 30분경까지 산발시위
- 8월 17일 시위로 주민 30여명 연행, 가족 및 주민 2백여명 경찰서앞 연좌시위 ( 태풍 글래디스 통과한 22일에도 연좌시위)
- 8월 19일 동자부회신도착 "원전추가설치는 계획 갖고있으나, 원전입지는 아직 선정안됐으며 울진 2개지역도 계획이 구체적으로 확정된바 없고 핵폐기장 설치는 소관부처인 과기처에서 회신토록 통보함"
- 8월 21일 청협등 9개단체 공동으로 핵발전소신규건설취소 및 반대주민 탄압중단 등의 내용의 성명서 발표
- 8월 31일 반투위총회 '반대서명추진, 관계기관 방문'결정
- 9월부터 '원전추가건설 및 핵폐기장 설치 반대 범군민 서명운동'전개
- 9월 12-13일 울진,후포에서 제이씨주관 '8.17원전반대 군민집회 거리사진전' 개최(1천2백여명 참관), 구속자(이춘근,서수용-후포) 석방을 위한 가두서명활동 전개
- 9월 12일 반투위대표단 14명 2만 5천주민 서명명부지참 동자부방문 및 관계자면담(장관: 1,.2호기건설시 3,4호기 부지도 확정된 것, 군민은 반대아니라 협조해야할 것, 92년 5월에 3,4호기 착공할 것, 5,6호기도 건설이 계획대로 될 것임, 산포직산에 대해서는 주민공청회 거쳐 여론반영할 것임)
- 9월 19일 반투위 1백여명 참석한 가운데 서울 보고대회 가짐, 전혀 모르고 있던 산포직산(그 당시는 5,6호기로 전해짐)에 대해 놀람, 매스컴을 통한 주민홍보, 군민총궐기대회, 학생등교거부, 원전반대입장 깃발 제작배포 등의 8가지 투쟁방안 마련, 공동위원장 사퇴의사 표명( 이후 거론하기로), 경찰 공무원 배석퇴장.
- 9월 25일 반투위 운영위 개최
- 9월 28일 반투위 50여명 의원들(국회,도,군)과 간담회( 김중권: 3,4호기는 이미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수용해야 하지만 5,6호기 및 산포직산-분리된 문제로 인식-은 수용 못한다. 군민이 원한다면 자신이 투쟁위원장을 맡을 용의도 있다고 언급)
- 10월 7일 민중당 지구당( 황윤길) 창당 1주년기념 행사가짐( 군민회관, 5백여명 참석,장기표 초청강연-핵자체의 반대와 원전건설 및 폐기장건설정책을 비난), 주민 2백여명 가두진출 시도 저지 인도행진함
- 10월 11일 동자부장관실에서 의원들(도2,군5명)이 정부관계자 5명(장관포함)과 면담(정부:산포리지역 주민들만 찬성한다는 발언)
- 10월 12일 공추련주도 '핵발전소 및 핵폐기장 건설반대 공동투쟁 모색을 위한 각지역 환경단체연석회의'에 주광진 참석
- 10월 25일 반투위 임시회의(30여명 참석) 개최해 서울 면담결과 보고가짐
- 11월 5일 서울에서 '전국 핵발전소 핵폐기물처분장 반대대책위원회' 결성 (임원식 부위원장 공동의장에 선출(중동해권담당)
- 11월 7일 반투위총회 개최( 남부지역 거의 불참)하여 3,4호기반대운동 계속하기로 결정(도군의원은 3,4호기 인정하고 5,6호기부터 반대주장), 이장집단사퇴는 이장과 면담후 결정, 향후 투쟁 방향 설정 못한 채 끝내 운영의 난맥상 노출
- 11월 14일 각읍면 투위 회의 개최
- 11월 15일 원전반대깃발 1천여매 제작 도로변 건물 부착( 울진,근남,원남), 곧 철거됨,
- 11월 20일 22일 예정대로 군민궐기대회 개최한다는 소식과 함께 울진신문에 성명서 발표(정부의 8월 10월 면담시 발언취소, 일부정치인의 3,4호기 반대운동 없었기에 찬성발언은 운동을 희석시키는 것 등이다. 8월 17일의 결사반대의지를 재확인한다)
- 11월 22일 반투위 원전반대 2차 궐기대회 개최 (옥외불허로 옥내집회, 군의원 2명등 주민 6백 여명만 참석, 남부지역반투위 사실상 해체로 거의 불참, 11시 40분시작 40분동안 진행후 평화적 시가행진, 자진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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